사진과 AI로 책을 만드는 일 02
첫 글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고르는 일과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살폈다. 사진들을 골랐다면 이제 순서를 정해야 한다. 어느 사진으로 시작하고, 무엇을 그다음에 놓고, 어디에서 책을 덮게 할 것인가?
그때에는 색이 비슷한 사진끼리 놓거나, 촬영한 날짜순으로 정리하는 방법이 먼저 떠오른다. 둘 다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 이 책의 순서가 정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색은 이어지는데 생각은 제자리에 있을 수 있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무엇을 보고 있는지 흐려질 수도 있다.
나는 순서를 정할 때, 다음 사진이 앞 사진에 무엇을 더하는지부터 살펴보고 싶다. 설명을 보태는 경우도 있겠지만, 처음의 인상을 의심하게 하거나 한동안 지나쳤던 부분을 다시 보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차이를 확인하기 위한 작은 편집 방법을 생각해 본다.
먼저 임시 순서를 만든다
처음부터 가장 좋은 순서를 찾으려 하면 첫 사진을 정하는 일부터 막힐 수 있다. 첫 사진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의 임시 순서를 만들어 두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열 장을 골랐다면, 지금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는 순서로 놓아 본다. 열 장은 연습을 위한 숫자일 뿐이다. 앞뒤를 한 번에 살필 수 있는 작은 묶음이면 된다.
이때 사진마다 “어둡다”, “따뜻하다”, “쓸쓸하다”만 적기보다, 그 사진을 만나면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적어 볼 수 있다. 처음으로 사람이 등장한다. 멀리 보던 장소 안으로 들어간다. 앞에서 보았던 물건을 다른 거리에서 만난다. 이런 기록은 사진의 내용과 배열의 기능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직 기능을 설명할 수 없는 사진도 남겨 둘 수 있다. 설명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빼 버리면, 지금의 생각으로는 다루지 못하는 사진까지 너무 빨리 제외할 수 있다. 다만 “이 사진이 없으면 아쉽다”는 마음과 “이 자리에서 이 사진이 필요한 이유”는 잠시 나누어 생각해 보려 한다.
임시 순서는 비교할 대상이다. 한 번 만든 뒤에는 그대로 지켜야 하는 약속이 아니다.
나란히 볼 때와 넘긴 뒤에 볼 때
순서는 파일 이름에 번호를 붙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두 사진이라도 양쪽 페이지에 나란히 놓는 것과, 한 장을 넘겨 다음 사진을 만나게 하는 것은 다르다.
Jörg Colberg는 포토북을 논하면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펼침면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짚고, 사진의 순서와 펼침면 배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한다.[1] 사진 파일의 순서만 정해 두었다면, 아직 책의 읽는 방식을 모두 정한 것은 아닌 셈이다.
여기서는 첫 글에서 사용한 세 이미지를 다시 놓아 본다. 첫 글에서는 실패와 엉킨 실 다음에 어느 이미지를 고를지 비교했다. 이번에는 세 장을 모두 남기고 순서만 바꾸어 보려 한다. 새로 완성한 연작이나 실제 책의 내지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선별한 뒤에 남는 판단을 살펴보기 위한 편집 모형이다.



먼저 실패와 짧은 실을 나란히 놓아 보자. 첫 이미지에는 감긴 실과 풀려 엉킨 실이 함께 있다. 두 번째 이미지에는 밝은 종이와 회색 천 위에 각각 놓인 짧은 실이 보인다. 나란히 보면 실의 양과 형태, 바탕의 차이를 비교하기 쉽다. 복잡하게 얽힌 선에서 가닥의 꼬임과 섬유로 시선을 옮길 수도 있다.
이번에는 두 이미지를 서로 다른 펼침면에 놓고 넘겨 본다고 생각해 보자. 두 번째 이미지를 만날 때 첫 번째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두 장을 직접 맞대는 대신, 방금 본 실뭉치의 인상을 가지고 짧은 실을 보게 된다. 그런 간격이 이 책에 필요한지는 실제로 묶어 넘겨 보아야 알 수 있다.
짧은 실과 앞치마의 관계도 살펴볼 수 있다. 나란히 놓으면 청록색 실과 앞치마의 바느질 자국을 바로 연결할 수 있다. 한 장을 넘겨 앞치마를 만나게 하면, 실의 형태를 보던 관심이 해진 천과 사용의 흔적으로 옮겨 갈 여지가 있다. 물론 독자가 반드시 그렇게 읽는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방식이 더 깊다고 정할 수는 없다. 물질의 차이를 비교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나란히 놓는 편이 정확할 수 있다. 한 장을 먼저 충분히 보게 하고 싶다면 넘김을 사이에 둘 수 있다. 여백도 마찬가지다. 빈 페이지를 넣었다고 자동으로 여운이 생기지는 않는다. 무엇을 보고 난 뒤의 빈자리인지가 중요하다.
반복은 무엇을 되돌아보게 하는가?
비슷한 사진이 나오면 중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복을 모두 줄이고 나면, 책 안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작은 차이도 사라질 수 있다.
Keith Smith는 Lesley A. Martin과의 인터뷰에서, 책의 이미지 관계가 바로 옆 사진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앞에서 본 이미지로 생각을 되돌리거나, 떨어져 있는 장면들을 연결하는 읽기도 중요하게 다룬다.[2] 이 관점은 순서를 단순히 매끄러운 연결로만 판단하지 않게 한다.
처음에 본 창문이 책의 뒤쪽에 다시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그사이에 인물이나 생활의 흔적을 보았다면, 두 번째 창문은 첫 번째와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다. 창문 사진 자체가 크게 달라서가 아니라,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본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복을 점검할 때는 비슷한 사진이 몇 장인지 세는 것과 함께, 다시 등장했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물어볼 수 있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반복이 필요한 작업은 있다. 거의 같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느낌 자체가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아끼는 사진을 모두 남기기 위해 반복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두 번째로 등장하는 사진을 잠시 뒤쪽으로 옮겨 보거나, 가운데 있던 사진을 바꾸어 보는 방법부터 제안하고 싶다. 반복되는 두 장만 비교할 때와, 그 사이를 실제로 지나가며 볼 때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두 시안을 비교할 때에는 조건을 줄인다
이제 같은 세 장으로 서로 반대 방향의 순서를 만들어 보자.
시안 A: 실패와 엉킨 실 → 짧은 실 → 앞치마



이 순서에서는 실의 서로 다른 상태를 본 뒤, 해진 앞치마의 바느질을 만나게 된다. 재료의 형태에서 그 재료가 쓰이는 자리로 관심이 옮겨 갈 수 있다. 마지막 앞치마를 보고 나면 앞의 실도 단순한 색과 질감만으로 남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해진 곳을 잇는 재료로 다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안 B: 앞치마 → 짧은 실 → 실패와 엉킨 실



앞치마로 시작하면 사용과 해짐의 흔적을 먼저 본다. 그다음의 짧은 실은 처음부터 앞치마와 연결해 읽힐 수 있다. 마지막의 실패와 엉킨 실에서는 다시 질서와 흐트러짐의 대비가 커진다. 시안 A에서 마지막까지 따라갔던 사물의 용도가, 시안 B에서는 재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쪽으로 열릴 수도 있다.
이것은 실로 앞치마를 만드는 과정이나, 앞치마를 풀어 실로 되돌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세 이미지는 그런 실제 경위를 증명하지 않는다. 같은 세 장에서 어떤 연상이 생길 수 있는지 비교한 것이다. 이 배열도는 두 순서를 한눈에 보여 주지만, 실제 책의 페이지 넘김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안이 더 좋은지는 이 묶음에서 무엇을 계속 보려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사용과 수선을 중심에 두고 싶다면 앞치마에 도착하는 순서를 검토할 수 있다. 물질의 형태와 상태가 관심이라면 앞치마에서 출발해 실로 돌아오는 순서도 살펴볼 만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선택을 끝내지는 않으려 한다. 실제로 넘기며 봤을 때도 그 차이가 남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교하는 동안에는 이미지 크기와 여백, 캡션을 가능한 한 같게 둔다. 순서와 크기와 글을 동시에 바꾸면 어느 변화가 읽기에 영향을 주었는지 가려내기 어렵다. 먼저 순서를 비교하고, 그다음에 필요한 곳의 크기나 간격을 바꾸어 본다.
두 시안을 넘기면서 세 곳만 표시해 볼 수 있다. 다음 장을 보고 싶어진 곳, 이미 본 내용을 되풀이한다고 느낀 곳, 이해되지 않아 되돌아간 곳이다. 되돌아간다는 사실 자체를 성공이나 실패로 정하지는 않는다. 관계를 더 살피려고 돌아갈 수도 있고, 필요한 정보가 빠져서 돌아갈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의도를 먼저 길게 설명하지 않고 읽게 해 보는 방법도 있다. 그 뒤 “어느 쪽이 더 좋으냐?”와 함께 “각 순서에서 무엇이 먼저 보였느냐?”를 물어본다. 답이 내 예상과 다르더라도 바로 순서를 고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설명해 줄 때에만 성립하는 연결이 있다면 그 부분은 다시 볼 만하다.
AI 이미지의 연결에는 확인할 것이 더 있다
AI 이미지도 순서를 바꾸어 볼 수 있다. 다만 여러 이미지를 연결하면서, 개별 이미지에는 없던 사건이나 관계가 생기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이미지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실제로 동일한 인물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앞의 장면과 뒤의 장면을 붙였다고 해서 그 일이 시간순으로 일어났다는 근거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AI로 만든 허구의 연작에서는 그런 연결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관객에게 실제 기록처럼 제시하려는 경우에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리는 설명을 포함해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한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중간 이미지를 새로 생성할 필요는 없다. 먼저 두 장을 떨어뜨려 놓거나, 다른 장면을 사이에 두거나, 필요한 설명이 빠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연결이 어긋나는 이유를 알기 전에 이미지를 더 만들면 비슷한 후보만 늘어날 수도 있다.
반대로 필요한 장면이 분명히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면 새로 만들 이유가 생긴다. 그때의 요청은 “같은 분위기로 한 장 더”보다 구체적일 수 있다. 앞 장면에서 아직 보이지 않았던 거리, 인물과 장소의 관계, 다음 장면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성한 이미지도 실제 묶음 안에 넣고 다시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에는 접어서 넘겨 본다
화면에서 전체를 살피는 일과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모두 필요하다. 전체를 펼쳐 놓으면 반복되는 형태나 빠진 부분을 찾기 쉽다. 책처럼 묶으면 지금 보고 있는 장면과 다음 장면 사이의 관계가 더 분명해질 수 있다.
Colberg는 복잡하게 제작된 견본뿐 아니라, 간단한 출력물을 붙인 초기 더미도 유용하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그 단계에서도 책처럼 넘겨 볼 수 있다는 점이다.[1] 처음부터 인쇄소에 보낼 수준의 파일을 완성할 필요는 없다.
종이를 접어 대략의 판형을 만들고, 이미지를 임시로 붙여 보자. 가운데 접히는 부분에 중요한 형태가 걸리는가? 같은 크기로 놓았는데 어떤 사진만 지나치게 강한가? 한 장을 넘겼을 때 바로 다음 사진이 보이는가,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빈 면을 먼저 만나게 되는가?
이 단계에서는 완성도를 평가하기보다 바꿀 곳을 표시해 두면 된다. 사진을 옮길 것인지, 크기를 바꿀 것인지, 글이 필요한지, 그 사진 자체를 다시 고를 것인지 구분해서 적는다. 다음 더미에서는 그 가운데 한두 가지를 바꾸어 보고 싶다. 그렇게 해야 무엇이 나아졌는지, 무엇을 다시 되돌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참고한 글
- Colberg, Jörg. (2017). Understanding Photobooks: The Form and Content of the Photographic Book. Routledge. Chapter 3, 특히 pp. 42, 62, 66–67. DOI: 10.4324/9781315709031.
- Martin, Lesley A. (2019, January 31). How to Make Books that Sing Like Sinatra. Keith Smith와의 인터뷰. Aper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