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란?
사진 작가의 정의는 무엇인가?
전시를 많이 한 사람인가?
수상 경력이 화려한 사람인가?
카메라를 오래 들고 다닌 사람인가?
나는 아직 개인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여섯 명의 조직에서 일어난 일
지난달 말,
함께 사진을 찍던 팀에서 일이 있었다.
내가 탈퇴한 카페
그 단체의 이름으로 전시를 한다고
집행부라는 이름으로 통보 카톡이 왔다.
팀원 (적어도 내겐)에게 먼저 묻지 않았다.
곤란해하는 멤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결정이 먼저 내려지고,
따르라는 통보가 뒤따랐다.
여섯 명이다.
600명도 아니고,
60명도 아니다.
달랑 여섯 명.
여섯 명짜리 모임에서 집행부 결정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밥 한 끼 먹으러 가도 여섯 명이면 서로 뭐 먹을지 물어본다.
그런데 전시라는,
시간과 돈과 작품이 걸린 일을 팀원의 의견도 듣지 않고 밀어 붙였다.
나에게 먼저 물어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물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약속이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막아주겠다"는 약속.
나는 그 약속을 믿고 그 팀에 남았었다.
그런데 정작 그 일이 생겼을 때,
돌아온 것은 "집행부의 결정"이라는 한 줄이었다.
“신뢰”가 깨진 것이다.
전시라는 착각
한국 사진 세계에는 이상한 공기가 있다.
전시를 하면 대단한 것이라는 착각.
전시는 돈만 있으면 한다.
1년에 열두 번이라도 할 수 있다.
갤러리 대관료를 내고,
액자를 맞추고,
오프닝에 지인을 부르면 전시다.
그것 자체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대단한 것은 작품이다.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이 보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가?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가?
집에 돌아가서도 떠오르는가?
그것이 작품의 힘이고,
작가의 가치다.
서로만 알아주는 전시,
서로만 축하해주는 오프닝,
서로만 좋아요를 누르는 사진 — 그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가?
나도 역시 그 안에 있었다.
이제야 그것이 보인다.
고맙고 감사한 일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 일에 감사한다.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관성으로 함께했을 것이다.
"그래도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니까"라는 이유로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터지면서 선명해졌다.
네이버 카페를 바꿔야 했다.
“바꿨다.”
작가반을 휴강한다고 공지해야 했다.
“했다.”
새로운 작가반을 어떤 기준으로 꾸릴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마련했다.”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했다.
“설계했다.”
전부 그 고통이 밀어붙인 일들이다.
고통이 없었으면 움직이지 않았을 일들이다.
역시 뭔가 부서져야
새로 짓는 법이다.
아버님의 점심 준비를 하면서
일요일은 내가 당번이다.
아버님 점심을 준비하면서,
치우고,
설거지하고,
일주일 동안 쌓인 것들을 하나하나 깔끔하게 정리한다.
혼자 하는 일이다.
혼자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가족 일,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
감사한 일들,
상처받은 일들,
지나간 일들,
이불킥 같은 일들,
앞으로 닥칠 것들…
손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된다.
앉아서 곰곰이 생각할 때보다,
몸을 움직이면서 흘려보낼 때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오늘 선명해진 것은 이것이다.
이 나이에,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앉아 있는 수업을 왜 내가 해야 하는가?
자책해 본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왜 그 정도의 판단을 스스로 내리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오래 끌었을까?
아꼈던 사람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아끼지 않았다면 상처도 없었을 것이다.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실망이 생긴 것이고,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배신감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접시를 닦으면서 깨달았다.
안타까움은 안타까움대로 두고,
나는 나대로 가면 된다는 것을.
상처를 안고 머무르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 정의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는 전시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자기가 왜 이 이미지를 만드는지 아는 사람이다.
세상에 이미 넘쳐나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그럼에도 자기가 이 한 장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기능인이다.
그 이유가 있는 사람은 전시를 한 번도 하지 않았어도 작가다.
나는 아직 전시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왜 이 이미지를 만드는지 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줄 일이다.
끝으로
함께했던 분들에게 감사하다.
같은 피사체 앞에 서고,
같은 계절을 걸었던 시간은
진짜였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그리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고통에도 감사하다.
그 고통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더 단단한 자리로 옮겨 앉게 해주었으니까.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간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