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기술이라는 착각

2026년 1분기,
작가반 강의를 시작했다.

자신 있었다.

처음엔 열서너 명이 모였다.
다른 곳에서 미드저니를 배운 분들,
내 수업을 거쳐 올라온 분들,
그리고 이래저래 서너 명이 더 합류했다.

사진 경력 20년, 30년, 40년 된 작가분들도 있었다.
전시회를 여러 차례 해 본 사람들도 있었다.
이력만 놓고 보면 내가 가르칠 위치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나는 철학 위주로 강의를 설계했다.
왜 이 이미지를 만드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사진과 어떻게 다르고,
어디서 만나는가?
작가로서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반응은 차가웠다.

그들이 원한 것, 내가 준 것

그분들은 고급 기술을 배우러 왔다.

파라미터 세팅,
고급 프롬프트 구조,
최신 워크플로우,
남들이 모르는 팁.
빠르게 습득하고,
자기 작업에 바로 적용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술 철학을 이야기하고,
미술사를 이야기하고,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

원하는 것과 주어지는 것의 간격.
그 간격을 견디지 못한 분들이 하나둘 기초반 강의에 내려가 앉기 시작했거나,
작가반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4월이 되어 새로운 과정이 시작하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웃음거리

그분들 눈에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사진 전시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강의를 한다?
경력 수십 년의 사진가들 앞에서 철학을 이야기한다?
고급 기술이나 빨리 가르쳐주면 될 것을,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웃음거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그 시선이 틀렸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그 기준 안에서 판단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해야겠다

고급 기술이라는 것은 6개월이면 바뀐다.

올해 초에 최신이었던 파라미터가 여름이면 구식이 된다.
남들이 모르던 워크플로우가 석 달 뒤엔 유튜브 기본 강좌에 올라온다.
AI 도구의 세계에서 기술의 유통기한은 놀라울 만큼 짧다.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고급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고급 기술을 다룰 줄 아는 눈과 머리다.

한 장의 이미지를 보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부족한지 읽어내는 눈.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 작업의 위치를 가늠할 줄 아는 시야.
새로운 도구가 나왔을 때 그것을 자기 언어에 맞게 전용할 줄 아는 사고력.
선배 작가의 작품 앞에서 기법이 아니라 의도를 읽어내는 감각.

이것들이 없으면,
고급 기술은 그저 손에 쥔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바뀌면 끝이다.
그러나 보는 눈과 생각하는 머리는 도구가 백 번 바뀌어도 남는다.

내가 작가반에서 가르치려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안타까운 풍경

고급 기술만 배워서 자기 욕심만 채우겠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AI 아트 세계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사진 세계에도,
어느 분야에도 있다.
빠르게 가져가고,
빠르게 써먹고,
빠르게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그 마음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전략이 결국 자기를 제한한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유튜브를 켜면 나오고,
커뮤니티를 뒤지면 나온다.
기술만으로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차별화는 그 기술 위에 얹히는 시선과 사유에서 나온다.

경력 40년의 사진가가 AI 앞에서 초심자가 되는 순간,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자기가 40년간 쌓아온 보는 눈을,
새로운 도구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고민의 자리가 바로 철학이고,
내가 마련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그 자리였다.

빈 강의실이 보여준 것은,
내 강의의 실패가 아니라

이 시대의 조급함이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바꾸기로 했다

강의를 접는 것이 아니다.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열서너 명을 앉혀 놓고 강의하는 방식은 끝났다.
앞으로는 함께 작업할 소수의 동료를 찾는다.

기술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선을 키우고 싶은 사람.
빠른 결과가 아니라,
깊은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더 이상 강사가 아니다.
facilitator다.

함께 보고,
함께 생각하고,
서로의 작업을 날카롭게 만들어주는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이다.

빈 강의실이 가르쳐준 것이 하나 더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신뢰하는 소수와 깊이 나누는 것이
결국 더 멀리 간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전시 경력이 없다.
사진을 시작한 지 겨우 2년 반이다.
내 이력서에 채울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나누어 주려고 한다.

빈 강의실 앞에서도 이 방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고급 기술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기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눈을 키우고,
머리를 키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있다.

15개월 동안 함께 걸어온 사람들,
지금 스스로 불을 피우고 있는 여섯 명의 사람들이 그 증거다.

느리더라도,
이쪽이 맞는 길이다.

추신:
고급기술을 원한다고?

ComfyUI + Flux.2 설치하여 자동화하는 강의 ?
Discord 서버에서 대면 강의 ?


이들 내용… 아직까지 강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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