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을 키우는 사람

불을 피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그 불이 스스로 타오르게 하는 일이다.

15개월 전,
나는 미드저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아는 걸 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르치다 보니 깨달았다.
내가 혼자 아무리 잘해봐야 닿을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내 장작불 하나로는 이 넓은 들판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기술을 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불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을 키우기로 했다.

여섯 개의 장작불

15개월이 지난 지금,
여섯 명의 강사가 탄생했다.
이 사람들은 이제 독자적으로 AI 이미지 생성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내가 옆에 없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이 여섯 명이 만들어지기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기술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의 전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프롬프트 구조,
파라미터 설정,
이미지를 읽는 눈,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감각 — 하나도 아끼지 않았다.

"이건 아직 알려주기엔 이르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씨앗에 물을 주고 나면 싹이 트는 건 씨앗의 몫이듯,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간 동안 신뢰를 보냈다.

이기적인 불은 오래 타지 못한다

이 세계에서 종종 보는 풍경이 있다.
좋은 기술, 좋은 프롬프트, 좋은 워크플로우를 발견하면 꽁꽁 숨기는 사람들.
혼자만 알고,
혼자만 쓰고,
혼자만 잘하겠다는 사람들.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공들여 알아낸 것을 쉽게 나누기 싫은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전략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본다.
그것도 두 가지 이유에서.

첫째,
AI 도구는 너무 빠르게 변한다.
오늘 숨겨둔 기술이 석 달 뒤엔 기본 기능이 되어 있다.
혼자 축적한 우위는 생각보다 빨리 증발한다.
반면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그들의 예상 밖의 시도를 통해, 자기 자신이 계속 갱신된다.
나누는 행위 자체가 배움의 구조를 만든다.

둘째,
혼자 타는 불은 연료가 자기 자신뿐이다.
아무리 크게 타올라도 결국 자기를 태워 꺼진다.
하지만 옆에 장작불을 하나 더 피워주면,
그 불은 또 다른 불을 피우고,
들판 전체가 밝아진다.
그때 처음 불을 피운 사람의 불도 더 오래,
더 환하게 탄다.


신뢰라는 연료

장작불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연료가 하나 있다.
기술도 아니고,
커리큘럼도 아니다.
신뢰다.

"이 사람은 나를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성장하길 바란다."

배우는 사람이 이 확신을 가지는 순간,
배움의 속도가 달라진다.

방어가 풀리고,
질문이 솔직해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추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신뢰에 금이 간다.
금이 간 신뢰 위에서는 어떤 교육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반대로,
신뢰가 깊으면 가르침은 기술을 넘어선다.

단순히 "미드저니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왜 이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이 이미지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까지 대화가 닿는다.
그 지점에 도달한 사람이 결국 독립적인 교육자가 된다.
기술만 배운 사람은 기술밖에 전할 수 없지만,
철학까지 체득한 사람은 자기만의 불을 피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 함께할 사람을 고를 때 신뢰를 가장 먼저 본다.
기술은 함께 가며 채울 수 있다.
감각도 시간이 키워준다.
하지만 신뢰가 없는 관계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그것을 지난 달,
몸으로 배웠다.


들판을 밝히는 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칠십에 사진을 시작했고,
AI를 배운 지 겨우 2년이 조금 넘었다.
내가 가진 건 많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불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여섯 개의 장작불이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타오르고 있다.

그 불빛 아래서 또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 풍경을 상상하면,
나는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작불을 키우는 사람이 되자.
혼자 밝게 타는 것보다,
들판 전체를 밝히는 쪽을 선택하자.

그것이 내 교육 철학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는 강사가 아니라 facilitator로.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걷는 자리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작지만 단단한 불을 피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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