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에 사진을 시작한다는 것
우리가 전전하는 이유
사진 동호회를 전전한다.
카페를 옮기고,
아카데미를 바꾸고,
출사 팀을 갈아탄다.
60대, 70대 사진가들 사이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나도 그랬고,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왜 옮기는가.
사진을 못 찍어서가 아니다.
장비도 좋고,
기술도 배웠고,
출사도 다녀왔다.
그런데 자기 사진을 보면 뭔가 허전하다.
옆 사람 사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같은 곳에 가서 같은 것을 찍고,
비슷한 보정을 하고,
비슷한 제목을 붙인다.
이 답답함을 해소할 방법을 모르니까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카페를 바꾸면 뭔가 달라질까,
선생을 바꾸면 나아질까.
솔직히 말하면 문제는 장소가 아니다.
"뭘 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못 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도 그렇다.
뭘 만들고 싶은가는 어렴풋이 있는데,
만들어진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다.
강의를 하면서도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제대로 그려지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끼리끼리
대다수의 사진가들은 이 답답함을 끼리끼리 문화로 해소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팀을 만든다.
같이 출사를 간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것을 찍는다.
그리고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돌아와서 서로 사진을 보여주고,
잘 찍었다 좋다 한다.
애써 위안한다.
우리가 전문 사진가도 아니고,
다 늙어서 취미로 하는 거 아닌가?
생활 사진이지,
예술 하겠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자위가 반복되면 질문 자체가 사라진다.
내가 바라보는 게 틀린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했다.
재미로 하는데 왜 이렇게 진지하냐는 말도 들었다.
종종 이런 권유도 받는다.
취미로,
재미로 하시라고.
새로운 사람 만나서 놀고,
시간도 보내고,
운동도 하고,
교류도 하는 시스템으로 가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진이 달라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편하게 찍으세요"
“나이 70에 사진을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봤을 때
한 갤러리 관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재밌는 거,
좋은 거,
편안한 거
찍고 지내세요~."
친절한 말이다.
하지만 돌려 말하면 이렇듯 들린다.
70세에 시작해서 뭘 하겠는가?,
편하게 지내시라.
한국에서 제일 큰 사진학과 대학교의 사진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재학생 전시회에 나오셨길래 물어봤다.
70세에 시작해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허 허,
네 네.
누구누구가 나이 얼마인데 어디서 전시했었고...
허 허.
대답을 피했다.
한국에서 70세에 전시를 했다고 좋은 사진가가 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Paris Photo에 간 적이 있다.
세계 최대 사진 아트 페어이다.
한국 갤러리 부스가 하나도 없었다.
한국 사진작가 독자 전시실도 없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나라가,
사진에서는 왜 이렇게 존재감이 없는가?
서로 잘했다고 끼리끼리 칭찬하는 사이에
세계는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다.
하지만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나 자신은 그 구조 안에서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할 수 있다.
40년의 눈
나는 40년 동안 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분자유전학이라는 분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일을 했다.
DNA의 98%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머지 2%에 속하는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결정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결정한다.
그것이 내 연구의 한 줄 요약이다.
은퇴하고 사진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AI 이미지 생성을 시작했다.
Midjourney라는 도구를 만났고,
프롬프트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글 몇 줄 쓰면 이미지가 나온다.
처음엔,
찍은 사진으로 포토샵으로 수채화를 그리겠다고
3일 밤을 새며 작업했었다.
Midjourney에서는 10분에도 수채화 몇 장을 생성한다.
많은 수의 논문을 쓰는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곧 알게 되었다.
이미지가 나오는 것과,
내 이미지가 나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카메라든 AI든 도구는 달라도
질문은 같다.
이것이 내 것인가?
60대의 친구들
같이 함께 공부하시는 대부분의 사진작가분들은 60대 이상이다.
은퇴한 학교 선생님들,
전직 엔지니어,
오랫동안 주부로 살아오신 분,
40년 직장 생활 끝에 처음으로 자기 시간을 가지신 분.
이력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수십 년 동안 무언가에 깊이 몰입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분들이 AI Art를 시작하면 처음 몇 주는 도구에 감탄한다.
그다음에 벽에 부딪힌다.
예쁜 이미지는 나오는데,
내 이미지는 안 나온다.
이 벽 앞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포기하거나,
질문을 시작하거나.
포기하는 분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소질이 없나 봐.
젊은 사람들이 더 잘해.
AI가 내가 원하는 그림을 안 그려 줘.
AI가 다 해주는 건데 내가 뭘 더 하겠어.
이 말들은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킨다.
내 것이 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
질문을 시작하는 분들은 다르다.
왜 내 이미지가 남의 것과 비슷하지?
내가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왜 이 빛을,
이 거리를,
이 구도를 좋아하지?
이 질문이 시작되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십 년의 경험이 질문의 깊이를 만든다.
한 수강생이 계셨다.
연세도 80대 중반이셨다.
Midjourney를 배운 지 석 달 만에,
그분의 이미지에는 일관된 회화감과 공간 감각이 나타났고,
다른 여타 수강생보다 단체포토북 이미지 10장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카페에 업로드하셨다.
40년간 사진 촬영하고 전시하셨던 눈이 프롬프트에 스며든 것이다.
80대 중반의 연세라면
전혀 컴퓨터 세대가 아니신데…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내 나이 15년 후에?
그 분 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분야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해 나갈 수 있을지?
이것이 60대,
70대가 가진 자산이다.
젊은 사람에게는 없는 것.
수십 년의 눈이다.
문제는 그 눈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
본인이 모른다는 것이다.
10년 후, 20년 후
지금 60대인 사람이 AI Art를 시작한다면,
10년 후 70대가 된다.
20년 후는 80대이다.
그때 AI 도구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을 것이다.
프롬프트를 쓸 필요조차 없어질 수 있다.
머릿속 이미지를 바로 생성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도구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기술은 도구가 해결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도구가 발전할수록 더 벌어진다.
지금 이 시점에 AI Art를 시작한다는 것은,
10년 후 20년 후의 자기 질문을
지금 준비한다는 것이다.
도구는 바뀐다.
질문은 남는다.
그래서, 의미가 있는가?
70세에 사진을 시작한다는 것.
60대에 AI Art를 시작한다는 것.
의미가 있는가?
나는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맞다.
다만 이것은 안다.
편하게 찍으라는 말에 순응하면 질문이 죽는다.
끼리끼리 안에서 서로 칭찬만 하면 눈이 닫힌다.
나이를 핑계로 멈추면 40년의 눈이 그냥 사라진다.
나는 아직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정확히 모른다.
강의를 하면서도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완벽하게 그려지는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이 불확실함 속에서 계속 질문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가진 60대,
70대 동료들과 함께 그 불확실함을 견디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완성된 답이 아니라
계속되는 질문.
70세에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가 있다면,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번 분기 작가반 휴강 공지를 올리기 전… 마음을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