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AI로 책을 만드는 일 04
앞선 글에서는 사진을 고르고, 순서를 정하고, 사진 옆에 글을 놓는 일을 살폈다. 이번에는 실제 책 한 권을 통해 그 선택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 Ed Ruscha가 1963년에 출간한 Twentysix Gasoline Stations다.[1][3]
제목 그대로 스물여섯 주유소의 사진을 모은 책이다. 소재만 들어서는 대단한 책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주유소 대신 문이나 의자, 버스 정류장을 같은 수만큼 모아도 비슷한 책이 되지 않을까?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이 그 질문의 답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MoMA에 공개된 작가의 설명과 소장품 기록, Getty의 전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 선택을 살핀다. 실물을 넘겨 본 서평은 아니므로, 종이의 감촉이나 전체 페이지의 리듬까지 평가하려 하지는 않는다.
제목은 완성한 뒤에 붙이는 것일까?
MoMA의 작가 오디오 설명에서 Ruscha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욕구를 먼저 이야기한다. 인쇄소에서 활자를 다루고 인쇄기를 운용하는 일을 배웠으며, 책에도 미술 작품으로서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스물여섯이라는 구체적인 수 역시 책의 편집과 완성이 끝나기 전에 떠올랐다고 설명한다.[1]
사진을 충분히 모은 뒤 좋은 것을 고르고 제목을 붙이는 방법과는 다른 출발점이다. 무엇을 몇 개 다룰 것인지가 작업의 조건이 된다. 제목은 결과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범위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수량을 정했다고 결과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주유소를 찍을지, 어디에서 볼지, 무엇을 남길지에 관한 판단은 여전히 필요하다. 내 작업에 ‘열두 개의 문’이라는 임시 제목을 붙여 보아도 곧 질문이 생긴다. 같은 건물의 문만 볼 것인가? 닫힌 문과 열린 문을 함께 다룰 것인가? 열두 개를 채우면 끝나는가?
이런 제목은 판단해야 할 조건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작업하면서 더 중요한 관심을 발견했다면, 그 관심에 맞춰 제목이나 수량도 다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규칙에도 선별은 남는다
Getty의 전시 소개에 따르면 Ruscha는 Los Angeles와 고향 Oklahoma City 사이를 오가며 Route 66 주변의 주유소들을 촬영했다. 전시는 책에 사용한 이미지뿐 아니라 다른 인화, 미수록 이미지와 contact sheet도 함께 제시했다.[2] 촬영과 책 사이에는 후보를 살피고 남길 것을 정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공개된 소개만으로 각 사진의 탈락 이유까지 알 수는 없다.
비슷한 대상이 반복되면 ‘같은 것을 계속 찍은 것’으로 정리하기 쉽다. 그러나 같은 종류로 묶었기 때문에 형태, 주변 공간, 거리와 표지의 차이를 비교할 수도 있다. 무엇을 같다고 보고 무엇을 다르게 볼 것인지가 함께 정해지는 셈이다.
물론 반복했다고 작은 차이가 저절로 중요해지지는 않는다. 비교할 이유가 약하면 비슷한 장면이 계속된다는 인상만 남을 수 있다. 각 사진이 충분히 특별한가와 함께, 여러 장을 보면서 어떤 비교가 가능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 장에서는 놓쳤던 차이가 다음 사진 때문에 보이는가? 같은 이름으로 불렀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들이 드러나는가?

위의 AI 이미지에서는 여러 나무 기둥이 한 화면에 들어 있다. 기둥의 크기 차이에는 원근이 작용하고, 비슷한 빛과 주변 공간이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이것만으로 각각 다른 장소의 기둥을 모아 만든 책과 같은 비교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여러 대상을 한 장에 넣는 일과, 여러 장의 관계를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편집 문제다. 이 이미지는 그 차이를 생각하기 위한 예시이며 Ruscha의 작품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
책이라는 물건까지 결정한다
MoMA는 소장본을 1963년 작품의 1969년 인쇄본으로 기록한다. 제작 방식은 offset printing이며, 닫힌 책의 크기는 약 17.9 × 14.1cm다.[3] 여기서 참고할 것은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와 함께 어떤 물건으로 만들었는지도 결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같은 이미지 묶음이라도 큰 낱장 인화, 작은 제본 책, 화면의 연속 이미지로 놓였을 때 독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달라진다. 책에서는 앞쪽으로 돌아가거나, 몇 장을 손가락으로 표시해 두고 다시 비교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져가 이어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실제 작업에서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작은 판형이 언제나 친밀하고 큰 인화가 언제나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지, 한 번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비교해야 하는지에 따라 크기의 역할은 달라진다. 인쇄를 마지막 기술 단계로 미루기 전에, 내 사진의 중요한 차이가 어느 크기에서 보이는지 확인할 이유가 있다.
규칙을 가져오는 것과 소재를 따라 하는 것
이 책을 참고한다고 모든 포토북이 대상을 분류하거나 일정한 수를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과 오래 나눈 관계를 다루는 책에서는 수량을 먼저 고정하면 중요한 변화가 그 수에 맞춰 잘릴 수도 있다. 반대로 인물의 사연이나 극적인 전환 없이, 같은 이름으로 묶은 대상을 계속 바라보는 일 자체가 책의 관심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가져오고 싶은 것은 주유소라는 소재보다 판단의 방식이다.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차이를 살피고, 그 차이가 독자에게 전달될 형식을 만드는 일이다. 오래 사용한 물건을 다루는 책이라면 같은 종류의 물건을 모아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용자의 이야기가 중요한 작업에서 이야기를 모두 덜어내고 겉모양만 맞춘다면, 간결해지는 동안 처음의 관심을 잃을 수도 있다.
형식이 단순해졌다는 사실과 작업이 정확해졌다는 판단은 따로 해야 한다.
AI로 주유소 스물여섯 개를 만들면 어떨까?
AI로 서로 다른 주유소 이미지를 스물여섯 장 만들고 작은 책으로 묶을 수 있다. 그러나 수량과 소재가 같다고 Ruscha의 작업을 같은 방식으로 수행한 것은 아니다. 실제 장소 사이를 이동하며 얻은 사진과 생성 모델로 만든 장소 이미지는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의 범위가 다르다.
가상의 장소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그 조건을 밝히고, 그 안에서 무엇을 살필지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유기, 차양, 간판 가운데 어떤 요소가 남아 있을 때 그곳을 주유소라고 읽게 되는가? 같은 요청을 여러 번 했을 때 어떤 외형이 반복되는가? 이런 질문은 생성 결과를 비교하는 출발점이 된다. 다만 몇 장의 이미지로 모델 전체의 작동 방식이나 학습 자료의 구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선별도 그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 보기 좋게 나온 이미지만 모으면 처음 궁금했던 불분명함이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이상한 이미지라는 이유만으로 포함하면 비교하려던 질문이 흐려질 수 있다.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바꿨는지 작업 기록을 남겨 두면, 다음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쉬워진다.
꼭 조사 보고서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 가상의 장소들을 통해 허구의 여행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책이라면 독자가 따라가게 할 거리와 순서, 반복과 변화를 판단해야 한다. 다만 생성된 장면에 실제 여행 기록처럼 지명과 날짜를 붙여, 그 이미지에 없는 이력을 만들지는 않아야 한다.
내 책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지금 작업 중인 이미지 묶음을 짧게 설명해 보자. 무엇을 포함하는지, 어디까지가 범위인지, 그 안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적는다. 그다음에는 설명과 잘 맞지 않는 한 장을 찾아본다. 그 사진을 빼면 범위가 또렷해지는가? 아니면 그 사진이 지금의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가?
예외를 모두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처음 정한 기준이 충분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수량도 마찬가지다. 열두 장으로 시작했더라도, 한 장을 더하거나 뺐을 때 새로 보이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정해진 수가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유지하고, 시작하기 편해서 정한 수라면 바꿀 수 있다.
마지막에는 왜 책이어야 하는지 적어 보고 싶다. 한눈에 펼쳐 놓을 때보다 넘기며 만날 때 얻는 것이 있는가? 앞 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인쇄한 크기에서 보이는 차이가 책의 관심과 맞는가? 아직 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작은 견본으로 비교할 일이 남아 있다.
스물여섯이라는 수를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이 책을 통해 내 작업에 되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모으고 있으며, 그 선택은 한 권의 형식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참고문헌
- Ruscha, Ed. (n.d.). Edward Ruscha. Twentysix Gasoline Stations. 1963, printed 1969. MoMA, 작가 오디오 설명 및 공개 원문. 책 제작에 대한 관심과 스물여섯이라는 수의 선행 결정에 관한 직접 설명을 참고했다.
- The J. Paul Getty Museum & Getty Research Institute. (2013). In Focus: Ed Ruscha. 전시 소개. 촬영 경로 및 다른 인화·미수록 이미지·contact sheet에 관한 설명을 참고했다. 작품 사진도 이 공식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The Museum of Modern Art. (n.d.). Edward Ruscha. Twentysix Gasoline Stations. 1963, printed 1969. 소장품 번호 706.2011. 1963년 작품과 1969년 인쇄본을 구분했으며, 제작 방식과 판형은 이 소장본의 기록을 참고했다.